여수 상백도 하백도 절경이 빚어낸 바다 위 천연 조각 여행기
짙은 푸른빛의 파도가 반짝이던 늦은 여름 아침, 여수 삼산면에서 배를 타고 상백도와 하백도 일원으로 향했습니다. 항구를 출발한 지 30여 분쯤 지나자 수평선 위로 크고 작은 섬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바위의 결이 또렷해지고, 해안선을 따라 기묘하게 깎인 절벽들이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여수의 백도(白島) 일원은 오랜 세월 풍화와 파도에 의해 형성된 천연 석조 예술의 현장이라 불릴 만했습니다.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흰빛 암석 군락이 햇살에 빛나며, 이름 그대로 ‘하얀 섬’이라는 뜻이 실감났습니다. 자연이 만든 풍경이 이토록 엄숙하고 고요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1. 여수항에서 백도로 향하는 항로
상백도와 하백도는 여수 삼산면 거문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20km 떨어져 있으며, 일반적으로 거문도항에서 출항하는 관광 유람선을 이용해 접근합니다. 배편은 하루 2회 정도 운항되며, 날씨에 따라 운항 여부가 달라집니다. 항구를 떠나면 처음엔 잔잔한 해역을 지나지만, 점점 파도가 높아지며 탁 트인 남해의 풍광이 펼쳐집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보면 섬이 한 겹 한 겹 겹쳐져 있는 듯 보이고, 햇빛이 바위면에 닿을 때마다 색이 미묘하게 변했습니다. 해안 가까이 다가가면 바다새들이 날아오르고, 파도에 부딪히는 물보라가 배 주변을 감쌌습니다. 항로 자체가 여행의 일부처럼 느껴졌습니다.
2. 상백도의 절벽과 생태 풍경
상백도는 높이가 100m를 넘는 해식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흰 석회암이 노출된 면이 바다와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섬의 동쪽 사면은 절벽 아래로 동굴이 형성되어 있고, 해식아치와 바위섬이 이어져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흰빛과 회색이 교차하며, 마치 거대한 조각 작품처럼 보입니다. 해안가에는 괭이갈매기와 가마우지가 서식하고 있으며, 봄에는 해국과 갯쑥부쟁이가 절벽 틈새에 피어납니다. 바람이 절벽을 타고 오르며 독특한 공명음을 내는데, 그 소리가 섬 전체를 감싸듯 울렸습니다. 상백도는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야생성과 고요함이 깊이 남아 있습니다.
3. 하백도의 기암괴석과 전설
상백도에서 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하백도는 더 작은 규모지만 풍경의 밀도가 높습니다. 섬을 둘러싼 암석은 다양한 형태로 깎여 있는데, 바다의 흐름과 바람이 만들어낸 조각처럼 섬세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병풍바위’와 ‘거북바위’는 하백도의 대표 절경으로, 이름 그대로 병풍처럼 펼쳐진 절벽과 바다를 향해 기어가는 거북 모양의 바위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신이 바다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흰 돌을 흩뿌려 두었다 하여 ‘백도’라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비로운 전설이 풍경과 어우러져, 섬 자체가 하나의 신화적 공간처럼 느껴졌습니다.
4. 보존된 자연과 생태의 섬
백도 일원은 천연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사람의 출입이 제한된 보호 구역입니다. 상륙은 허용되지 않지만, 유람선을 통해 해안을 따라 가까이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섬 곳곳에는 붉은해변쥐손이, 갯장구채, 바다비름 등 남해안 특유의 해안식물이 자생하고 있으며, 바위 틈에는 괭이갈매기의 집이 보였습니다. 배가 바위 가까이 다가서면 물빛이 옥색으로 바뀌고, 절벽 밑의 해조류가 일렁이며 색을 바꿉니다. 관광선에는 생태 해설사가 동승해 섬의 형성과정을 설명해주는데,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학습적인 경험으로 이어졌습니다. 자연의 시간과 생명이 공존하는, 남해의 숨은 생태 보고라 할 만했습니다.
5. 함께 둘러볼 여수 삼산면의 섬 코스
백도 일원을 관람한 후에는 거문도로 돌아와 ‘거문도등대’를 방문했습니다. 1905년에 세워진 이 등대는 지금도 현역으로 작동하며, 흰색 건물과 푸른 바다가 대비되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어서 ‘동도 해안산책로’를 걸으며 바다 위의 절벽을 따라 이어진 길을 따라갔습니다. 길 아래로 밀려드는 파도와 바람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마음을 시원하게 비웠습니다. 점심은 거문도항 근처의 ‘해풍식당’에서 먹은 전복뚝배기였는데, 바다향이 깊고 따뜻한 국물 덕분에 여정의 피로가 풀렸습니다. 오후에는 서도 마을로 이동해 주민들이 손수 말린 미역과 다시마를 구경하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자연과 삶이 함께 있는 여수의 섬들이 한눈에 담겼습니다.
6.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팁
상백도·하백도 일원은 일반인의 상륙이 금지된 천연보호구역이므로 유람선을 통한 해상 관람만 가능합니다. 출항지는 여수 연안여객선터미널 또는 거문도항이며, 날씨에 따라 운항 일정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관람 시간은 약 1시간 30분 정도이며, 망원렌즈나 쌍안경을 가져가면 세밀한 풍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봄과 가을은 날씨가 안정적이라 바다 색이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시기입니다. 여름철에는 햇볕이 강하므로 모자와 선글라스를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보호구역 특성상 쓰레기 투기나 소리 내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출항 전 여수시 문화관광 홈페이지에서 기상과 운항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무리
여수 삼산면의 상백도·하백도 일원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남해의 원형 같은 곳이었습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흰 돌섬의 모습은 신비롭고, 절벽과 파도, 바람이 어우러져 자연이 만든 조각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단순히 아름답다는 표현보다, 그 안에 깃든 시간과 생명의 질서가 경이로웠습니다. 배 위에서 멀어져 가는 섬을 바라보며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습니다. 다시 찾게 된다면 해가 기울 무렵, 노을빛이 바위에 닿아 황금색으로 변하는 순간을 보고 싶습니다. 여수의 상백도·하백도는 ‘바다 위의 유산’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경외감으로 남는 국가유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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